2008년 08월 28일
살아가는 이야기
1.
이사를 가기로 했다. 4년만이다. 어둑한 퇴근길에도 벌떡 일어선 길의 기세등등함은 언제나 꼿꼿했다. 4년 내내 그 완고함을 견딜 수 없어했다. 귀곡산장보다는 유복했지만 팬션별장보다 낫지 않았다. 자취 생활 십년에 방은 조금씩 넓어졌건만 이 집은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. 그나마 전망 좋은 옥상이 조금 미더울 뿐. 중요한 건, 그 벌떡 일어선 경사길의 가파름이 안기는 피로함이자 그 길이 자아내는 삶의 고단함이라는 은유였다. 하루하루, 피로함과 고단함 속에서 내 현실을 확인하는 일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. 그래서, 큰 맘 먹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.
2.
쥐뿔 가진 돈도 없어서 월세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며 집을 구하고 있다. 직장이 가까운 구로역 부근. 이 동네에 부동산이 그리 많은 줄 미처 몰랐다. 구멍가게나 수퍼보다 훨씬 많다. 덕분에,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구석진 곳들을 훑어보는 기분이다. 물론 이건 좋은 비유다. 한갓지게 동네 탐사에 나서겠다는 야무진 이유만이라면 그렇다는 거다. 주마간산 격으로 버스노선을 따라 훑어보던 뭉뚱그려진 동네를 속 깊이 들어가본다는 의미에서 말이다. 중국 교포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던 어둑한 반지하 방부터 유학 준비 중이라던 대학생의 옥탑방(백만년은 그냥 썻을 법한 양변기에 묻어있던!)이며, 식구 넷이 거주한다던 두 칸짜리 지층 방까지 모양새도 형편도 가지각색인 그런 집들을 둘러보았다.
3.
때문에,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 진다. 내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. 이런 심정은 아마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. 얼마 전 '오마이 뉴스'에 올라온 글을 보니, 애면글면 집을 구하며 똑같은 심정을 토로하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. 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부산서 상경했다는 글쓴이의 고생담이 정말 남 얘기 같지 않았다. 가진 돈은 뻔하고 구할 방도 뻔하다. 그마저도 남의 것이 되기 일쑤다. 혼자 방 구하러 다니지 말고 싸다고 덥썩 구하지 말고... 오랜 자취생활에 잔뼈가 굵은 후배의 경험담도 기억에 새롭다. 긴 터널을 지나야 당도하던 으슥한 자취방에 기거할 때 그녀는 얼마나 우울해했던가. 그리고서 옮긴 자취방에서 욕실 창을 넘어 들어왔던 변태와의 아찔한 순간은 또 어땠나. 남 얘기 같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. 그냥 여기서 살까. 어제 오늘은 정말 그런 생각이 굴뚝 같았다. 나 같은 도시빈민이 가질 수 있는 안락함이 얼마나 될까 싶은.
4.
'오마이 뉴스'에 글을 썼던 이는 결국 단촐한 옥탑방을 구한 모양이다. 내가 덩달아 기쁘고 다행스럽다. 그가 뿌듯해 하는 건 그래도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질거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새 집 때문일 것이다. 돌아가 쉴 곳의 안락함에 대한 기대. 그 기대가 내가 쥔 돈에 좌지우지 된다는 서글픔. 이쯤에서 자본주의 운운한다면 비겁한 일이 될테지만, 한줌의 안락을 얻기 위해 통장잔고를 쓰디쓴 현실로 파악해야 하는 건 영 달갑지 않은 일이다.
# by | 2008/08/28 02:32 | 알코니코친의 세례 | 트랙백 | 덧글(1)


